아날로그 유목민2011. 2. 21. 18:04













다방이야기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쫄래쫄래 들어간 역전다방은 말 그대로 신천지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테이블에 게임이 내장되어 있던 다방오락기! 사각형 테이블 한 모퉁이에 6~8인치 정도의 조그만 브라운관 화면과 간단한 조작기가 달려있는 형태였는데 주로 삽입돼 있던 게임은 갤러그의 원조격인 스페이스 인베이더였다. 단지 그뿐이였을까? 어린 동생의 탈지분유를 몰래 훔쳐먹기에 급급했던 그 당시 다방우유와 율무차는 너무 충격이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칙칙한 담배연기 사이로 아버지는 꽤나 진지하게 테이블에 앉아서 화면위에 커피 한잔 올려놓고 오락하면서 그렇게 빈 시간을 매워갔다.



































옛 도심 옛 사람

100년된 붉은골목이 때 마침 나를 환영한다. 늙은 도심엔 늙은 사람들이 산다. 서울 종로에 그리고 탑골공원에 그들만의 섬이 있는 것처럼 대구 종로에 그리고 진골목에 그들만의 섬이 있다. 아! 달성공원도 있지만... 그래도 난 좀 더 점잖은 진골목이 마음에 든다. 옛 도심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옛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도심도 늙어간다. 골목에서 나는 저 머나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다. 낯설다. 알 수 없는 묘함에 설레인다.  



























미도다방

종로2가 미도다방에 가면/정인숙 여사가 햇살을 쓸어 모은다/햇살은 햇살끼리 모여앉아/도란도란 무슨 애기를 나눈다/꽃시절 나비 이야기도 하고/장마철에 꺾인 상처 이야기도 하고/익어가는 가을 열매 이야기도 하고/가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도/추억은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다/종로2가 진골목 미도다방에 가면/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차 한 잔 값의 추억을 판다/가끔 정여사도 끼어들지만/그들은 그들끼리/주고받으면서/한 시대의 시간벌이를 하고 있다/ 미도다방의 단골이었던 전상열 시인이 타계 직전 발표한 시 "미도다방" 그렇게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옛 도심에 있는 옛 다방을 옛 사람들은 기억한다.


























섬에 들어왔다

자리하자 마자 오래된 성냥곽이 나를 반긴다. 이 곳 미도에는 그들만의 섬이 있는데 옛사람이 아니면 공유할 수 없는 부분들이 꽤 크다. 어릴적 기억을 짜내서 미도를 찾아왔지만 이내 곧 투명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런 나에게 말을 걸어준 이가 바로 미도다방의 가오마담 정인숙여사다. 그 당시엔 일본식 표현인 가오(예쁘다)와 프랑스식 표현인 마담(술집,다방등의 여주인)을 따다붙여 가오마담(얼굴마담)이라 흔히 불렀다. 할아버지 대에 부자였다가 보증 문제로 아버지 대에서 집안이 몰락, 고교 졸업 직후 생활 전선에 뛰어든지 40년이 된다는 그녀다. 스물한 살에 한복을 입기 시작 지금까지도 단아한 한복을 입고 정갈하게 움직이는 폼이 꽤 인상적이다. 미도를 찾는 할아버지들에게 정인숙 여사란 친구이자 벗, 그리고 애인 심지어 가족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고민이 생겼다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주문을 어떻게 해야할까? 한참동안을 상념에 잠긴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려 보면 그 좋아하던 율무나 우유도 생각나고 또 말로만 듣던 다방커피의 유혹도 있고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를 마셔볼까 하다가 아! 내가 이렇게 우유부단한 아이였던가 하고 휘모리장단으로 탄식을 한다. 마침 한 여사님이 "처음 오셨지? 처음 오셨으면 약차 한번 먹어보세요." 라고 하니. 그래, 어른 말 들어서 손해 볼 것은 없지. "그럼 약차 두 잔 부탁해요."     


























미도에 가면

오래된 웨하스와 생강과자와 파래롤을 맛 볼 수 있다. 그리고 주문한 한방 약차가 나왔다. 인근 약전골목이 있어 그런지 좋은 한약재를 싸고 쉽게 구할 수가 있다고 한다. 이내 약차를 고민 없이 주둥이를 내밀어 스르륵 담궈보니 쓰다. 여사님이 잘게썰인 생강에 흑설탕을 찍어 먹어보라 한다. 난 아직 아기 입맛인지 이내 인상만 쓴다. 이것이 연륜의 맛인 것인가? 단뒤에 쓴것이 마냥 달콤한 것만이 인생이 아니고 마냥 쓴 것만도 인생이 아니구나! 하고 나를 바로잡는다.

























사랑방 미도

하루 평균 400여명의 손님 중 단골이 200명이다. 대부분의 손님의 연령대가 70,80대이다. 개중에는 100세를 넘긴 단골 노신사도 있다. 주로 퇴역교수, 문인 등 지식인층이 많아 시낭송회가 즐기고 사회전반에 대한 담론하기를 좋아한다. 하얀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정인숙여사는 27살 때 이 다방의 주인이 되어 오랜시간 진골목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추억은 건강하지 못하다. 사랑방을 찾는 이도 한 둘씩 줄어들고 있다. 잇 따른 부고 소식때문이다. 미도의 추억을 간직한 이들은 조용하게 그 추억을 지운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가장 오래된 사랑방일지도 모른다.


























친구의 미도

그는 전혀 나와는 딴판이다. 대학교 1학년 러시아어 강의실, 둘 다 어리버리하게도 강의실을 잘 못 찾아왔다. 둘은 그렇게 친해졌다. 나도 특이했지만 그도 특이했다. 덕분에 대학시절 꽤 재미있던던 일화들이 많았다. 몇몇 소재들은 후배들에게서 아직도 전설로 회자되고 있는 내용도 있다.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S전자의 연구원으로 인도출신의 직장동료와 솰라솰라한다는 그와 그렇게 미도에서 만났다. "다방에 가서 차나 한잔하자!" 꽤 묘한 어조다. 그렇게 다방은 꽤 어두운 장소로 몰락했다. 부정적이였던 그도 미도에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진짜 진국 다방이네." 























이제부턴 나의 사랑방 미도

난 미도의 수명을 연장시킬 생각이다. 시내 수많은 커피숍을 제쳐두고 미도를 꽤 자주 빈번하게 이용하기로 했다. 물론 일행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물론 미도를 찾는 할아버지들의 공간을 뺏을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언젠간 사라지고 말겠지. 사라진다는 건 슬픈일이다. 하지만 사라져도 누구하나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꽤 좋지 아니한가? 이세상에 태어나고 사라지는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약정같은 것이라 생각한다면 더욱 그럴지도. 어떤 누구라도 우연한 마주침에도 이를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면 또 한번 미도를 찾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정인숙여사가 그랬던것 처럼말이다. 





















Posted by 악의축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저는 다방에는 한번도 가보질 못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게 전부거든요. 사진으로 이렇게 보는 것도 정말 신기합니다. ^^

    2011.02.21 18: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더 신기한 다방들이 많아요. 지금은 영업을 안하지만 진해의 흑백다방, 전주 삼양다방, 단양 춘방다방 등이요..

      2011.02.23 17:28 신고 [ ADDR : EDIT/ DEL ]
  2. 알 수 없는 사용자

    정말 신기해요
    뭔가 따뜻한 정겨운 느낌이랄까
    이런 사진을 담는다는 자체가 신선하고 즐겁습니다^^

    2011.02.21 18:45 [ ADDR : EDIT/ DEL : REPLY ]
  3. 알 수 없는 사용자

    사진과 글과는 달리 전 어릴때 기억하는 다방은...흔히 말하는 오봉순, 오봉돌이 등이랑..오토바이의 빠라바라바라밤~
    아이들에겐 퇴폐적이기도 하고..좀 그랬던 것들이 생각나네요. 그덕에 가보긴 커녕 입에 담기도 뭐 했구요..
    어떻게 보면 요즘의 카페가 예전에 다방일텐데.. 제가 크던 무렵엔 정말 많이 왜곡된 색깔들이 많았던것 같네요.
    요즘엔 홍대 클럽도 리스너들은 줄고 클럽=부비부비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문을 닫고 그런다는데 비슷한 경우인가 싶기도 하네요.

    2011.02.21 20:03 [ ADDR : EDIT/ DEL : REPLY ]
    • 오랜만에 듣네요. 빠라바라바라밤..ㅎㅎㅎ
      님과 몇살 차이가 안 나지 싶은데...서로 추억이 상반되군요..^^ 어 아쉽네요. 한때 한참 부비부비 하러 다녔는데 말이죠..

      2011.02.23 17:33 신고 [ ADDR : EDIT/ DEL ]
  4. 아직도 옛날식 다방이 있나요.
    4-50대 분들에겐 아직도 추억의 장소이지요 ^^

    2011.02.21 22: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미도다방에 대한 기사를 어디선가 본듯합니다.
    이색취미(여행)을 하시는군요.약차맛이 마구 궁금해졌습니다
    한번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글 적고 있어요.

    2011.02.21 23: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오랜된 것에 대한 이상한 애착이 있어서 말이지요..^^
      약차가 뭐 쓰죠...쌍화차는 어떨까요?

      2011.02.23 17:37 신고 [ ADDR : EDIT/ DEL ]
  6. 예전에 다방에 출근도장 찍었답니다^^
    그 미스김 보러^^

    2011.02.22 09: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알 수 없는 사용자

    미도다방 저도 다방에는 몇 번 정도 가본 것 같습니다.
    옛 어른들의 향수가 묻어있는 다방이야기 재미있게 읽고갑니다.

    2011.02.22 14:03 [ ADDR : EDIT/ DEL : REPLY ]
  8. ㅎㅎ
    다방.. 너무 오랜만에 보네요.
    그래도 종로 쪽으로 가면 종종 보이는데 ㅎㅎ
    80년대와 2011년이 공존하는 느낌이.... :D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1.02.23 09: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종로는 아니지만 대학로에 학림다방이라고 오래된 다방이 하나 있습니다. 뭐 다방보다는 카페가 맞겠지만요. 그집 치즈케익이 맛있는데...2층에서 혼자 조용히 책도 읽고 그랬는데 어느순간부터 사람들이 득실거리더라구요..모로지 카페나 다방은 조용한 맛이 있어야합니다.

      2011.02.23 17:47 신고 [ ADDR : EDIT/ DEL ]
  9. 태어나서 다방은 딱 한번 가보았습니다.
    그것도 몇일전 사업상 거래처 사장님 만나러 갔다가
    사장님 나이가 많으셔서 다방에서 보자고 하셔서...
    생각보다는 따뜻한 느낌이 들어 좋더라구요..^^

    2011.02.27 00: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알게모르게 우리가 생각하던 퇴폐가아닌 꽤 역사가 있는 다방들이 꽤 됩니다. 앞으로 그런곳들을 한번 소개해볼 작정입니다...^^

      2011.03.02 16:06 신고 [ ADDR : EDIT/ DEL ]